서유럽 7국 여행 일시 : 2015.10.15~26 (10박12일) 여행국 : 독일-오스트리아-이태리-바티칸-스위스-프랑스-열국 ★ 제6일차 2015년 10월 20일 (화) 로마-바티칸시국★
▲ 07:00 호텔에서 출발하여 로마로 입성하다. ▲ 로마시내로 오는 고속도로에서 국산차가 제법 많이 보인다.(08:02) ▲ 좌측으로 빠져 나가면 로마 시내로 가라는 안내 표지판 ▲ 2시간20분 거려 로마 시내로 쇼핑센타 주차장에 내린다. ▲ 쇼핑센타 옆 건물 ▲ 09:20 쇼핑센타 방문 (1시간소요) ▲ 로마시내관광은 거리 이동시간관계로 욥션으로 60유로 주고 벤츠 투어로 하며 기사님과 기념촬영 ▲ 벤츠 투어로 먼저 영화 "로마의휴일" 배경지인 트레비 분수로 간다. ▲ 트래비 분수=분수는 나폴리 궁전의 벽면을 이용해 만든 것으로 1726년 완성 되었으며,트레비 분수 이탈리아 건축가 니콜라 살비가 설계하고 건설은 1732년~1762년 살비도 교황도 죽은 이후 "주제페 판니니에 의해 완공 되었다, 높이 26.3 미터 (86 피트)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분수 중 하나에서 가장 큰 바로크 양식의 분수로 이곳에서 페데리코 펠리니의 라 돌체 비타 등 여러 영화에 무대가 되었던 곳이기도하다, (현재는 공사중으로 분수는 없다) ▲ 스페인광장 = 이탈리아인이 설계하고 프랑스인이 비용를 댔고, 과거에는 영국인이 배회했지만, 현재는 미국인 천지'라는 스페인 계단은 실제로 1725년에 프랑스 대사의 원조로 만들어졌고 이곳에 스페인 대사관이 있다는 이유로 이런 이름이 붙었다. ▲ 오드리 햅번이 어디선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나타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스페인 광장. 영화 <로마의 휴일>의 무대로 잘 알려진 곳으로 각국의 관광객들로 항상 붐비는 곳, ▲ 스페인광장옆에서 본젤라도 아이스크림을 시식했다. 본젤라토 아이스크림이 각종 과일 향으로 만든 제품으로 진열 ▲ 스페인광장을 뒤로 배경 ▲ 바르카차 분수 = 로마의 휴일로 유명한 스페인 광장과 스페인 계단. 그 바로 아래에는 특이한 모양의 분수대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바르카차 분수이다. ▲ 관광객을 위한 마차 (10:22) ▲ 판테온 신전은 그리스어 ‘판테이온’에서 유래한 말로, “모든 신을 위한 신전”이라는 뜻이다. 고대 로마의 신들에게 바치는 신전으로 사용하려고 지은 로마의 건축물로,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인 서기 125년경에 재건되었다. 모든 고대 로마 건축물 가운데 가장 보존이 잘 되어 있고, 전 세계를 통틀어 당대 건물 가운데서도 가장 보존 상태가 좋은 것으로 평가된다. 역사적으로 판테온은 쭉 사용되어 왔다. 현존하는 건물의 설계는 트라아누스 황제의 건축가인 다마스쿠스의 아폴로도루스가 했다는 견해도 있으나, 이 건물 자체와 건물의 설계는 하드리아누스 황제나 그의 건축가들이 공로했을 가능성이 크다. 7세기 이후부터는 로마 카톨릭교회의 성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판테온은 현재 로마에서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돔 구조이다. 바닥에서 원형 구멍까지의 높이와 돔 내부 원의 지름은 43.3m로 같다. ▲ 신전 천정의 지름 7.5m 채광창 유일하게 빛이 들어오는 곳은 천정의 원형 창('거대한 눈'이라고도 불린다)으로, 정오 무렵이 되면 태양 광선이 들어와 특별한 장소를 마모된 대리석 실내와 외부와 단절된 기하학적 공간으로 반짝이게 한다. 이 원형 창으로 들어오는 빗물이 빠져나가도록 바닥은 경사면으로 설계되었다. ▲ 판테온신전 뒤면 부분 - 붉은 색 옷을 입은 사람이 펼치는 공중부앙 믜 모습이 신기하다. ▲ 판테온 앞에는 로톤다 광장에 우뚝 서있는 오벨리스크 로톤다 광장(Piazza della Rotonda)의 분수는 그레고리 13세 때 착공하였고, 클레멘스 11세 때 오벨리스크를 추가하여 완성했다. Filippo Barigioni가 1711년 이 곳에 설치했다고 한다 . 이 오벨리스크는 이집트 헬리오폴리스(Heliopolis)라는 신전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 바실리카 대 성당 = 찬사와 순교자의 성모마리아 대성당이라는 거창한 이름이다. 이성당은 비오9세가 미캘란젤로가 설계한것이다.로마제국45대 황제 가이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306년에 로마 최대의 목욕탕을 지웠는데 그 목욕탕 일부를 연결해서 16세기에 성당을 지웠다. 현재의 입궁네 두개의 문은 폴란드 출신의 조각가 이고르 미토라이의 작품이다. 대천사 가브리엘로 부터 성령으로 예수의 잉태를 알게 되는 마이라의 모습과 부활하는 예수의 모습이 각각 조각되어 있는 금속의 문이다. 성당 바닥에는 별자리의위치를 통해 계절을 알수 있는 조각이 있다. 성당 내부에는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비롯한 많은 유명인의 상이 있다. ▲ 바살리카 성당 내부인데 외부보다 내부가 더 화려하다. ▲ 로톤다광장-판테온의 정문 앞에 조성한 로톤다 광장은 수많은 이탈리아(이태리) 여행자들로 가득하였다. 로톤다광장은 이탈리아 로마를 여행하는 모든 여행자들이 반드시 찾는 여행 명소이다. ▲ 치르코 마시모 대전차경기장 아벤티노 언덕과 팔라티노 언덕 사이에 있었던 로마 최대의 전차경기장이자 대규모 집단 오락시설이다 치르코 마시모 또는 키르쿠스 막시무스는 라틴어로 대형 경기장이라는 뜻이다. 본래 로마의 에트루리아 왕들이 경기와 오락을 위해 건설하였으며 목재로만 지었다. BC 50년경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약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증축했는데 당시 크기는 길이 621m, 너비 150m로 넓고 당시 로마 주민의 1/4 이상이 들어올 수 있었다고 한다. 그 후 더욱 확장되어 약 27만 명을 수용할 정도까지 커졌다. 549년에 마지막 전차경기가 벌어졌다. ▲ 로마의 포폴로 광장 (Piazza del Popolo) 핀초 언덕과 테베레 강 사이에 있는 포폴로 광장은 1820년 핀초 언덕을 조성한 주세페 바라디에가 완성하였다. 광장은 핀초 언덕과의 조화를 생각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언덕에서 바라보는 전경이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이집트에서 가져온 기원전 13세기의유물인 높이 24m의 오벨리스크가 중앙에 우뚝 솟아 있다. 광장의 남쪽은 코르소 거리와 이어져 있는데, 길 양쪽으로 일명 ‘쌍둥이 성당’으로 불리는 산타 마리아 디 미라콜리와 산타 마리아 디 몬테산토가 있다. 17세기에 건축된 것으로, 마틴 루터가 첫미사를 올렸으며, 갈릴레이가 구금을 당한 적도 있다. 지금은 프랑스 대사관으로 사용중이다. 광장의 북쪽에 있는 포폴로 문(Porta del Popolo)은 3세기경 고대 로마의 북쪽 입구인 플라미니오 성문 입구에 세워졌으며, 17세기 스웨덴의 여왕 크리스티나의 로마 방문을 기념하여 베르니니가 장식했다. ▲ 포폴로광장에서 공중부앙 ▲ 판테욘신전옆 공중부양 ▲ 산타 마리아 인 몬테산토(왼쪽) 산타 마리아 데이 미라콜리(오른쪽)는 바로크 건축가인 라이날디가 이 광장에 포인트를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대칭적인 형태로 설계했는데 왼쪽이 오른쪽보다 좁았던 이유로 오른쪽 성당인 산타 마리아 데이 미라콜리는 둥근 돔, 왼쪽의 산타 마리아 인 몬테산토는 타원형의 돔을 얹었다. 또한 광장에서 보이는 부분을 같은 크기로 하여 실제 크기가 다른 두 성당이 똑같아 보이도록 건축했다고 한다 . ▲ 콘스탄티노 개선문은 콜로세움의 바로 옆에 서 있으며 로마에서 가장 큰 문으로 3개의 아치로 구성된 높이 21m , 폭이 25m다. 이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15년에 세웠는데 프랑스 파리 마르세유 개선문의 시조가 된 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서울의 독립문이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을 모방하여 지었다. ▲ 콜로세움(Colosseum)은 고대로마 시대의 건축물 가운데 하나로 로마 제국 시대에 만들어진 원형 경기장이다. 현재는 로마를 대표하는 유명한 관광지로 탈바꿈하였다. 콜로세움이라는 이름은 근처에 있었던 네로 황제의 동상(巨像:colossus)에서 유래한다. 원래 이름은 플라비우스 원형 극장이었다. ▲ 콜로세움 내부 로마인들의 웅혼과 찬란한 문화, 잔인했던 왕정의 산물로 서기 72년 베스피시아노가 로마의 한 중심부에
있다 . 네로황제의 저택으로 약 24만평의'도무스 아우레아Domus Aurea'안에 있던곳에 측조를 시작했다. 원래 '플라비오 원형극장Anfiteatro Flavio'이라 불린 이 작품은 베스파시아노의 아들인 티토에 의해 서기 80년 문을 열었다. 고대 로마 유적지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4층으로 1층은 토스카나식, 2층은 이오니아식, 3층은 코린트식의 아치가 장식되어 있다. 경기장 바닥 밑에는 지하실이 많이 있었고 칸칸이 나뉘어진 이곳 위로는 나무바닥을 만들어 지상과 지하를 분리시켜 지하실에는 맹수,검투사,사형수들이 갇혀있었다. 로마를 상징하는 타원형의 이 건물은 최대지름 188m, 최소지름 156m, 둘레 527m, 높이 57m 로 약 20층 아파트의 높이다. 동시에 5만명 이상을 수용하여 모두가 편히 앉을 수 있었던 이 거대한 건축물은 검투사들과 맹수들의 혈전을 벌리는 곳으로 사용됐으며 또한 비가 내리거나 강렬한 햇볕이 내려쬘 때에는 이를 막기위해 거대한 천막 지붕을 쳤으며 이 작업을 위한 해군병사 두 팀이 있었다. 이 콜로세움의 제막식을 위해 펼쳐진 기념경기들은 무려 100일 낮과 밤 동안 지속됐으며 5천마리 이상 동물들이 죽어나갔다 한다. 117일 동안 계속된 트라이아노Traiano 경기에서는 9천명의 검투사들이 죽을 때까지 싸웠다고 전해지고 있다. 로마제국의 멸망과 함께 콜로세움은 점차 황폐해져 갔고 피와 전투의 장소였던 이곳엔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가져온 동물[악어,곰,사자,호랑이,코키리코뿔소,하마 낙타, 기린]과 함께 화초들이 수 세기동안 가꾸어지게 되었다. ▲ 진실의 입이 있는 코스메딘성당인데 들어 가면서 죄측에 진실의 입이 있다. ▲ 진실의 입.= 콜로세움에서 약 20분간 걸어 가면 있다.영화 "로마의 휴일"로 인해 '진실의 입'이란 별명이 붙으면서 유명해진 곳으로 이다. 이곳은 델라 베리타 광장에 있는 코스메딘 산타 마리아 성당의 입구에 있는데, 별볼일 없었던 하수도 뚜껑이라 해도, 4세기 경쯤 되는 나이 많은 물건이다. 강의 신 ' 홀르비오'의 얼굴이 조각되어 있는 진실의 입은 "거짓말을 한 사람이 입에 손을 넣으면 손이 잘린다는 전설을 간직하고있다. ▲ 로마 경찰청 건물 ▲ 베네치아 언덕에서 바라본 베네치아 광장 ▲ 베네치아 광장(Piazza Venezia)은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광장이다. 1871년 이탈리아 통일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되었으며, 현재는 테르미니 역과 함께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하며 광장 안에는 이탈리아를 통일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를 기리기 위한 기념관이 있다. ▲ 베네치아 광장에 있는 빅토리아 임마누엘2세 기념관, 이탈리아 초대 국왕인 빅토리오 엠마누엘 2세의 즉위를 기념해서 세운 것이다. 베네치아 광장 남쪽에 세워져 있으며, 정면의 기마상이 엠마누엘 2세. 이 기념관에는 이탈리아의 통일에 기여한 무명용사들의 묘가 있으며, 박물관에는 통일 운동에 관한 자료도 소장 되어 있다. ▲ 포로 로마노=팔라티노 언덕에서 내려다 본 포르 로마노는 고대 로마의 중요한 생활 중심지로 팔라티노 언덕과 캄피돌리오 언덕 사이의 발치인 다소 습한 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로마시대의 중요한 신전과 원로원, 사법, 금윤, 상업 활동의 장소로 교회와 개선문 등이 있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장군은 황제와 모든 시민이 보는 앞에서 티투스의 개선문을 통하여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도로인 ' 비아 사크라'를 통해 캄피돌리오언덕으로 올라가 주피터신전에 전승을 보고하였다...고 한다. '포로Foro'는 '공공의 광장'이라는 이름대로 처음에는 변두리 성의 사람들이 모이던 시장터였다. 하수도가 만들어진 BC 6C경부터 차츰 상점, 건물 등이 들어서고 도시의 기능이 충실해져 상업. 종교, 정치의 중심지가 되었다. 입구의 바실리카 에밀리아는 사법, 금융, 상업등의 거래를 행하는 공공 건물로 410년에 서고트 족이 로마를 점령할 당시 화재로 일부가 소실된 건물이다. 원로원은 북서쪽에 있는 4층 건물로 바닥은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다. 로마제국의 멸망 후 이곳은 흙에 묻혀버렸고 본격적인 발굴이 시작된 것은 19세기부터며 지금도 발굴과 복원작업이 게속되고 있다. 바실리카 에밀리아, 원로원세베레스 개선문, 마메르티노 감옥, 라피스 니제르,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와 시저신전, 베스타신전, 로스타연단, 성스러운 길, 티투스개선문 ,로무루스신전 등 약 1시간 가까이 관람한다. ▲ 로마 시청 ▲ 포로노마노 전망대 로 건너 가는 다리 ▲ 흰션이 상공에서 보면 꽃 모양을 나타낸다. ▲ 점심을 먹은 중국식 식당
▲ 바티칸 시국 전체 지도 ▲ 바티칸 안내도 ▲ 바티칸 시국 박물관 입구 ▲ 바티칸 시국 박물관 입장권 ▲ 박물관 입구로 들어 간다. ▲ 입장하면서 안전검색을 받고 있다. ▲ 둥근 통로를 통하여 2층으로 간다. ▲ 성녀 헬레나 ▲ 성헬레나 석관 ▲ 통로 천정에 그림은 종이나 직물이 아니라 프레스코로 그린 그림인데 입체감이 살아 있다. 회반죽 칠을 한 벽에 마르기전에 축축한 신선(FRESCO)할때 물감으로 그린 그림이다. ▲ 성노지론 ▲ 바티칸 박물관 관람하고 나오면 바로 성베드로 성당으로 간다. ▲ 성 베드로 대성당(이탈리아어 Basilica di San Pietro in Vaticano)은 바티칸 시국 남동쪽에 있는 대성당을 말한다. 바티칸 대성당 이라고도 부른다. 성지 가운데 하나이자 기독교 세계의 모든 교회 가운데 가장 거대한 교회로 유일무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서기 90년 예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자 나중에 로마 초대 주교, 즉 교황이 되는 성 베드로의 무덤 위에 대성당을 건립했다고 한다. 성 베드로 대성당이 로마의 수많은 교회 가운데 가장 유명하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대중의 인식과는 달리 으뜸 교회는 아니다. 로마 교구의 대성당의 명예를 지닌 교회는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 성 베드로의 시신이 대성당의 제대 아래에 묻혀 있는 까닭에 옛날부터 교황이 선종하면 그 시신을 제대 아래에 안치해오고 있다. 대성당은 4세기 이래 이 장소에 있었다. 대성당의 건설은 1506년 4월 18일에 시작되어 1626년에 완료되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그 종교성과 역사성, 예술성 때문에 세계적인 순례 장소로 유명하다. 르네상스 부터 바로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예술계의 거장들이 주임 건축가 직책을 계승하면서 오랜 세월에 걸쳐 지은 건축 작품으로서 당대의 가장 거대한 건물로 여겨진다. 로마의 모든 초창기 성당들처럼 성 베드로 대성당 역시 입구가 동쪽에 있으며 후진(後陣)은 서쪽 끝에 있다 . ▲ 성베드로 성당 내부 ▲ 성베드로 청동상 순례객들의 염원이 깃든 산피에트로의 청동상은12세기 아르놀포디캄피오의 작품이다. 중세시대에는 성지순례객드링 마지막으로 방문하던 종착지였다. 로마로 돌아와 마지막으로 성베드로의 오른발에 입맞춤을 하는 것으로 성지순례를 마쳤다고 한다. 현재는 입맞춤을 금지하고 잇으며, 손을 대는것만 허용하고있다. ▲ 성베드로 동상 ▲ 시스티나 성당은 바티칸 시국에 있는 교황의 관저인 사도 궁전안에 있는 성당이다. 건축 양식이 구약성경에 나오는 솔로몬 성전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전하며,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산드로 보티첼리 등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이 그린 프레스코 벽화가 구석구석에 그려져 있다. 그 가운데서도 미켈란젤로는 교황 율리오 2세의 후원을 받으면서 1508년에서부터 1512년 사이에 성당의 천장에 12,000점의 그림을 그렸다. 시스티나 성당은 1477년에서 1480년 사이에 기독교의 오래된 옛 대성당을 복원했던 교황 식스토 4세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 기간에 피에트로 페루지노, 산드로 보티첼리, 도메니코 가를란다요를 포함한 화가 무리는 모세와 그리스도의 생애를 묘사한 프레스코화 벽판 시리즈를 만들었다. 그 그림들은 1482년에 완성되었으며, 1483년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기념 미사때 식스토 4세에 의해 축성되었다. 식스토 4세의 치세 이래, 시스티나 성당은 교황이 종교적·직무상의 활동을 하는 장소로서의 소임을 해 왔다. 오늘날에 이곳은 전 세계의 추기경들이 모두 모여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종교적 의식인 콘클라베를 여는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 가이드로 부터 시스티나 성당에 내부 벽화에 대하여 설명을 듣고 있다. ▲ 미켈란젤로 의 최후의 심판
▲ 바티칸 주요건물을 경비하는 병사 (스페인용사) ▲ 지구본 = 피나의 정원의 명물..구리지구본, 구리 지구본은 로마올림픽을 기념하여 제작된것으로 멸망해가는 지구를 형상화한 조형물 지구안의 지구라는 이름...Pirro Ligorio의 작품으로 1816년에 제작되었다. 실제로 하루에 한바귀씩 돌아 가고 있다. ▲ 바티칸시국 미나 정원 (일명 솔방울 정원) 바티칸 시티내 솔방울 정원이다. 원래 이름은 피냐 정원(Pigna Courtyard)인데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4m 높이를 자랑하는 커다란 솔방울이 있어서 <솔방울 정원>이라 불린다. 중세 시대에 성베드로 성당 정원으로 이동되었다. 1608년에 다시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솔방울 아래의 받침부분은 솔방울과 재질이 같아 같은 시대 함께 제작한 작품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실은 아비다 누스 황제의 무덤을 장식했던 것으로 진품 공작 누오보관에 전시되어 있다. 성 베드로 광장은 바티칸 시국에 있는 성 베드로 대성전의 바로 앞에 조성된 광장이다. 바티칸 시국은 로마시에 둘러싸여 있는 비지국으로 로마 교황국 교황청이 다스리는 나라이다(광장은 로마 시의 보르고 리오네 구역과 동쪽으로 접경을 이룸). 최대 30만 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 성 베드로 광장의 설계자는 잔 로렌초 베르니니이다. 베르니니는 성 베드로 대성전을 설계하면서, 카돌릭 교회가 그곳을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포용하고 있다는 뜻을 전하고자 했다. 그는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성 베드로 대성전의 돔을 머리로 두고, 반원형의 회랑 두 개를 팔로 묘사함으로써 성 베드로 대성전이 두 팔을 벌려 사람들을 모아들이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성 베드로 광장 양편에 각각 네 줄로 늘어선 토스카나식 기둥 284개와 벽에서 돌출된 기둥 88개로 이루어진 베르니니의 회랑은 1656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667년에 완공되었다. 16m 높이의 원기둥꼴 대리석 기둥 위에 있는 140개의 성인상은 베르니니의 제자들이 조각한 것이다. ▲ 성 베드로 광장은 바티칸 시국에 있는 성 베드로 대성전의 바로 앞에 조성된 광장이다. 바티칸 시국은 로마 시에 둘러싸여 있는 비지국으로 로마 교황청이 다스리는 나라이다. (광장은 로마 시의 보르고 리오네 구역과 동쪽으로 접경을 이룸). 최대 30만 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 1909년 성 베드로 광장과 대성전 성 베드로 광장의 설계자는 잔 로렌초 베르니니이다. 베르니니는 성 베드로 대성전을 설계하면서, 가톨릭교회가 그곳을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포용하고 있다는 뜻을 전하고자 했다. 그는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성 베드로 대성전의 돔을 머리로 두고, 반원형의 회랑 두 개를 팔로 묘사함으로써 성 베드로 대성전이 두 팔을 벌려 사람들을 모아들이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성 베드로 광장 양편에 각각 네 줄로 늘어선 토스카나식 기둥 284개와 벽에서 돌출된 기둥 88개로 이루어진 베르니니의 회랑은 1656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667년에 완공되었다. 16m 높이의 원기둥꼴 대리석 기둥 위에 있는 140개의 성인상은 베르니니의 제자들이 조각한 것이다. ▲ 성베드로 광장 분수대 ▲ 성베드로 광장 ▲ 교황님이 행사 있을때 베란다에 나와 손을 흔들어 준다 ▲ 성베드로 광장 전경 ▲ 상공에서 본 성베드로 광장 ※ 이렇게 6일차 투어를 마무리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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