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7국 여행 일시 : 2015.10.15~26 (10박12일) 여행국 : 독일-오스트리아-이태리-바티칸-스위스-프랑스-열국 ★ 제4일차 2015년 10월 18일 (일) 이탈리아-피렌체★ ☆ 이탈리아 ☆ ☞ 피렌체 로마에서 북서쪽으로 약 230㎞ 떨어져 있다. 이 시는 공화국, 토스카나 공작령의 수도, 이탈리아의 수도 등 다양한 지위를 누리며 긴 역사를 이어왔다. 14~16세기에는 예술을 비롯하여 상업·금융·학문 등의 분야에서 높은 위치를 점했다. 가장 유명한 인물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브루넬레스키, 단테, 마키아벨리, 갈릴레오 및 메디치 가문을 들 수 있다. 관광업이 시 경제활동의 기반을 이루고 있으며, 전통적인 수공예품인 유리제품과 도자기, 귀금속제품, 가죽제품, 예술 복제품, 연철 및 짚 제품, 고급 의류와 구두 등의 제조업도 이루어진다. ▲ 호텔에서 07:30 출발하여 피렌체로 향한다 .
▲ 08:20 휴게소 들리다. ▲ 휴게소에 내부에 화장실이 있는데 유료이다. 다시 출발은 08:40에 하다. ▲자동차 번호판이 유럽연합 번호판으로서 좌측 유럽마크 아래 있는 영문자 I 는 이탈리아를 나타낸다. ▲ 드디어 피렌체 도시가 보이는 미켈란젤로 언덕으로 올라간다. ▲ 미켈란젤로 언덕 위에 광장에 도착하다. (10:08)= 이동소요시간 2시간40분 ▲ 뒷편 둥그모양지붕이 피렌체 두오모성당이다. ▲ 뒤편에 아르노강 뻬키오 다리도 보인다. ▲ 피렌체 시내를 배경 ▲미켈란젤로 언덕에 올라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을 똑 같이 만든 복제 청동상이고 원본은 시뇨리아 광장에 있다. 미켈란젤로는 가장 위대한 예술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르네상스의 거장이다. 그는 인체의 미를 표현하는 데 일생을 바쳤으며, 지상의 열정과 신에 대한 경외 사이에서 어느 예술가의 작품보다도 웅장하고 경이로운 조각과 회화를 창조하였다. ▲ 미켈란젤로 광장과 언덕 미켈란젤로 광장은 피펜체 동남쪽에 있는 작은 언덕으로 피렌체 시를 한 눈으로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의 언덕에 있다.두오모를 비롯하여 베키오다리가 인상적인 이 광장은 아르노강 남쪽기슭의 언덕위에 조성되어 있다. 이 광장에는 미켈란젤로 작품 " 다비드 상"의 복사품이 있다.미켈란젤로 광장에서 내려다 본 피렌체 시의 두오모 성당과 도시 건물 붉은색 지붕이 인상적이다. ▲ 피렌체 구 시가지로 간다. ▲ 앞 쪽 좌측에 있는 사람이 현지 가이드 이름이 특이하여 "노시내" 입담이 엄청 세다 ▲ 아르노 강과 베키오 다리
▲ 피렌체 구시가지로 들어 간다. ▲ 피렌체 광장 ▲ 페레이드 ▲ 가로수가 올리브 나무인데 열매가 달렸다. ▲ 면세점에 들린다. ▲ 11:40 시노리아 광장 도착하다. 시뇨리아 광장은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광장이다.우피치 미술관과 베카오궁전 앞에 위치하고 있으며, 광장 곳곳에는 피렌체의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동상들이 서 있다.
▲ 12:00에 점심식사하러 간다. ▲ 이태리 전통음식인 스파게티로 식사하다. ▲베키오궁전14세기 후반 중세 르네상스 시대의 문을 연 도시 이탈리아 피렌체의 관광명소 중에는 한때 피렌체공화국의 청사로 쓰였던 베키오 궁전(Palazzo Vecchio)도 포함되어 있다. 토스카나 대공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메디치 가문의 코시모 공작이 1540년 조르지오 바사리(Giorgio Vasari)에게 개조를 요청해서 지금의 멋진 자태로 완성된 건물이다. 날렵하게 솟은 사각 종탑을 보면 누구나 베키오 궁전임을 알아차린다.베키오 궁전 2층에는 ‘500인 회의실’이라는 대형 홀이 위치해 있는데, 양쪽 벽면에는 바사리와 그의 제자들이 메디치 가문의 전쟁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그린 대형 프레스코화 시리즈가 걸려 있다. 프레스코화는 석회와 모래를 섞은 회반죽을 벽에 바르고 물기가 마르기 전에 젖은 안료로 그리는 기법이다. 프레스코(fresco)는 이탈리아어로 ‘신선하다’는 뜻이다. ▲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피렌체가 외국 군대의 위협에 직면했을 때 이 도시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미켈란젤로에게 성당의 지도자들은 피렌체 시 공화국의 새로운 헌법과 예술적 우위를 기념할 목적으로 1501년에 다비드(David) 상을 의뢰했다. 다비드 상을 만드는 일은 미켈란젤로에게는 새로운 도전이며 기회였다. 그는 26세의 나이에 반세기 전에 조각가 두치오가 쓰다 실패해 버려둔 대리석으로 3년 만에<피에타>보다 더 훌륭한 걸작을 완성시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다비드는 골리앗이란 적의 대장을 돌팔매로 죽인 소년 영웅으로서 뿐만 아니라 정의로운 개혁의 왕으로서 피렌체의 개혁정부에 타당한 상징적 인물이었다. 5.49m의 거대한 다비드 누드상은 시 정부의 자유 수호의 상징으로 시청인 팔라조 베키오 앞에 세워졌다. 당시의 시민들은 도전적인 시선과 잘 발달된 근육을 가진 순수한 다비드 속에 자기들의 미덕이 구현되었다고 믿었다(현재 원작 다비드 상은 보존상의 문제로 시청 앞에서 피렌체 아카데미 건물 내부로 옮겨져 있다). 미켈란젤로도 시민들의 이러한 바람을 알았지만 살아 있는 가장 위대한 조각가 라는 명성에 걸맞는 가장 아름다운 세기의 명작을 만들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 ▲ 시뇨리아 광장에는 각종 유명한 조각상을 복제하여 진열되어 있다. ▲ 우찌찌 미술관 실내 입구 물 뿌리는 아기 천사 ▲ 겐타우르스 ▲ 페르세우스 ▲ 포세이돈 어드벤처 ▲ 도나텔로 (도나텔로에 대한 동경보다 닌자 거북이 중 한명이라 찍음 ▲ 행위 예술가 ▲우피찌 미술관 메디치 가문의 문화유산 우피치 미술관(Uffizi Gallery).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후손 안나 마리아 루도비카는 가문의 종말을 생각하면서 얼마나 많은 생각과 고민을 했을까? 결국 그녀는 1737년 메디치 가의 궁전을 피렌체시에 기증하면서 메디치가를 불멸의 가문, 영생의 가문으로 만들었다. 만약 피렌체에 메디치가문이 없었다면...지금의 피렌체도 없었을테다.우피치 미술관은 ㄷ자 형태로 되어 있는 3층 건물로 1584년 바사리의 설계로 만들어졌다. 코시모 1세 시대부터 각지에 분산되어 있던 메디치가가 연고가 있는 미술품을 모으기 시작했단다. ▲'우르비노의 비너스' ▲ 엘레강스 그녀 ▲ 단테 1265년 생- 1321년 졸 피렌체 출생. 예언자 또는 신앙인으로서, 박해를 가한 조국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전인류에게 영원불멸의 거작 《신곡 Divina Commedia》(1307?∼1321)을 남겼고, 이것으로 중세의 정신을 종합하여 문예부흥의 선구자가 되어 인류문화가 지향할 목표를 제시하였다. 단테는 피렌체의 겔프당의 귀족 가문의 출신으로, 부친은 알리기에로 디 베를린 치오네, 모친은 벨라라고 하였으나 그들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조부는 신성로마 황제를 섬겨 십자군에 참가하여 전몰한 피렌체의 기사 카치아귀다라고 《신곡》의 <천국편> 제15가(歌)에서 밝혀 두고 있다. 그가 9세 때에 마치 천사처럼 청순한 베아트리제를 연모하였음이 시집 《신생 Vita Nuova》(1293?)에 나타나 있다. 그녀에 대한 사랑의 감정은 그의 시의 형성과정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단테는 수도원이 경영하는 라틴어학교를 다녔고, 이어서 피렌체의 석학 B.라티니에게 사사하여 문법 ·논리학 수사학을 배웠으며 볼로냐대학에서 수사학 ·철학 법률학 천문학 등을 연구하면서 특히 이탈리아어로 시를 지었다. ▲ 길바닥에 단테 얼굴리 세겨져 있다. ▲ 단테의 집=Dante, Alighieri(1265~1321). 이탈리아 최대의 시인. 피렌체 태생. 9세 때 미소녀 베아트리체(Beatrice, 1266~1290)와 처음 만나 플라토닉한 사랑을 느끼고, 평생 변함이 그 애정이 그의 정신생활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베아트리체는 천상적(天上的)인 사랑의 상징으로 아름답게 형상화되어《신생,신곡>에서 읊어지고 있다. 베아트리체가 젊은 나이로 요절하자, 그는 그 죽음을 깊이 애도하고, 정열을 학문연구에 기울이고, 철학· 신학에 침잠(沈潛)하여 거기서 위안을 찾아냈다. 피렌체대학, 볼로냐대학에서 수사학을 공부하고 상류사회에 출입, 1295년경 피렌체시의 여러 요직에 취임하면서,귀족의 딸과 결혼하여 4자녀를 얻었다. 피렌체의 행정장관으로 활약, 시의자주독립을 꾀하고 불안을 일소한듯이 보였으나, 반대당에 의한 정변으로 실각, 추방의 몸이 되고, 한때는 사형판결까지 받았다(1302년). 그 후는 이탈리아 각지의 궁정과 프랑스에서 방랑생활을 했고, 만년에는 라벤나의 영주(領主)에게 몸을 기탁하다가 그 곳에서 병사하였다. 《신생》은 31편의 연애시를 모은 이탈리아어 작품으로, 어 문학을 세계수준에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종교적 서사시신곡은 방랑 중에 집필하기 시작, 《지옥편》, 《속죄편》을 완성하고, 만년에 《천국편》을 완성하였다. 그리스도교적 세계상을 장대한 상징 형태로 예술화하여, 사상적인 깊이, 창조적 상상력, 고뇌와 정열의 강렬함, 언어의 아름다움으로 해서 비할 데 없는 명작으로 손꼽힌다. 단테의 생가는 확실히 사았다는 증거가 없고 단지 추정을 뿐이다. ▲ 베키오 궁전 (두오모성당 가기전에 나온다) ▲ 피렌체 두오모 성당 :두오모는 1292년에 착공되어 1436년에 완공되었으며 정식 명칭은 '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이다. 깜비오(Arnolfo di Cambio)가 설계를 하였고, 106m의 높이를 자랑 하는 돔은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 작으로 1420년 착공후 14년간 이 건축 공사에 종사했으며 사후 1461년에 완성을 보았다. 대리석 모자이크 장식의 벽체는 장관을 연출하며, 내부는 전성기 고딕 아치형 천정이 아치들로 받쳐져 있다 . 피렌체 두오모는 아르노강의 북쪽, 피렌체시의 중앙부에 자리잡고 있다. 르네상스 양식의 상징적인 성당으로 알려져 있고 꽃의 성모 마리아 성당이라고도 한다. 140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완성되었는데 외관도 화려하고, 웅장하다. 성당안에는 예술의 도시 피렌체의 대성당에 어울리게 부속 미술관을 비롯하여 여러 조각과 회화가 보존되어 있다. 냉정과 열정사이'라는 책과 영화에서 주인공 남.녀가 10년뒤에 만나기로 한 곳이 돔 위의 쿠폴라... 그 위에서 내려다보는 아름다운 피렌체 시내의 전경은 붉은 지붕의 집들의 조화로움과 아름다운 전경들이 넓게 펼쳐져 동화속 그림같다. 그 위에서 피렌체를 내려다보면서 사랑이 이루어지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기위해 오는사람들도 있다고한다.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에 예수님의 열 두 제자의 조각상 우윳빛 석조건물에 새겨진 아름다운 돌조각들은 피렌체가 누렸던 르네상스 시대의 풍경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 피렌체의 꽃의 성모마리아 대성당 옆에 있는 로렌조 기베르티의 작품 천국의 문 ===천국의 문(황금색 문)으로 관광객들이 들어가지 못하고 사진 찍기에 바쁘다. ▲ 천국의 문 앞에서 ▲ 건물 외형이 넘 아름답다. ▲ 피렌체 관광을 마치고 로마로 이동 하기 위하여 고속도로 이동중 들린 휴게소 (16:55) 19:00 로마 부근 호텔에 도착한후 저녁식사하다' ▲ 오토바이도 주차장 한칸을 사용하네 ▲ 휴게소 에서 출발 하다.(17:15) ▲ 호텔에 도착 하니 비가 세차게 내린다. 여기서 오늘 일정을 마무리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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