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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제6일차 여행 (2011.7.29)

포항스타 2011. 7. 29. 21:24

 

☞터키-이스탄불 (2011년 7월 29일)

 

  ★보스포러스해협 유람선 투어 

 

  이스탄불 시내를 가로지르는, 지중해(에게해, 마르마라 해)와 흑해를 잇는 해협. 러시아

  우랄 산맥,  캅카스 산맥과 함께 유럽 지역과 아시아 지역을 나누는 지리적인 경계선이다.

  해협이라지만 폭은 바다치고는 상당히 좁아서 바다라기보다는 한강 같은 좀 큰 강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해협에 입지한 이스탄불은 바닷길과 육로가 맞물리는 요충지였기 때문에

  고대부터 중요한 도시였고 결국 로마 제국, 동로마 제국, 오스만 제국까지 수천년간 수도로

  기능하게 된다.

  흑해는 반드시 이 해협을 통해야만 큰 바다로 나갈 수 있는 바다기 때문에 흑해에 접한 다른 나라들

   (불가리아, 루마니아, 우크라이나, 조지아, 러시아[1][2])은 터키의 허락이 없으면 사실상 호수

    내륙국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러시아는 넓은 바다로 나가는 길을 얻기 위해 수백년동안 터키와

    티격태격했다.(러시아-튀르크 전쟁) 터키로서는 이 해협을 잃는다는 건 망한다는 것과 같았으므로

    반드시 사수해야 할 지점이었고. 현대 이스탄불은 해협 서쪽은 구시가지, 동쪽은 주거지이다.

    해협을 잇는 다리가 2개, 철도가 있으며 3번째 다리와 아브라시아 해저터널(Avrasya Tüneli)을 건설

     중이다

  보스포루스 해협

    흑해마르마라 해를 잇고, 아시아유럽을 나누는 터키해협이다.

   길이는 30 km이며, 폭은 가장 좁은 곳이 750 m이다. 깊이는 36 에서 120 m 사이이다.

   오랫동안 군사적인 요충지로 알려져 왔고, 18세기 이후에는 다르다넬스 해협과 함께

   해협항행권(航行權)을 둘러싼 '해협문제'로 세계의 관심을 끌었다.    

   해협 양쪽으로 이스탄불 시가 자리잡고 있다.  1973년에 완성된 해협 횡단의 유라시아

   대교(大橋:일명 보스포루스교)는 세계 유수의 현수교로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국제간선도로이다.  해협을 횡단하는 두 개의 다리가 건설되어 있으며,  2008년을 목표로

  바다 아래로 기차 터널을 건설하고 있으며 한국의 SK가 주도하는 컨소시엄이 2층 구조의 자동차

  도로공사를 시작하였다. 5.4Km의거리이며 2016년에 완공될 것으로 예상된다.

   07:00 아침식사를 마친 우리는 보스포러스 해협 유람선 투어를 위해 골든 혼에 있는

    선착장에 도착한 후 대기하고 있던 배에 오른다.

    가이드가 예약해 놓은 작은 규모의 전세유람선이다.

 골든 혼(Golden Horn)

   골든 혼은 흔히 금각만(金角灣)이라고 하는데 터키어로는 할리치(Haliç)다.

   아름다운 보스포러스 해협과 마르마라 해의 바닷물이 서로 만나 섞이는 지점에서 내륙으로

   길게 뻗어 있어서 유럽 쪽 이스탄불을 고대 제국이 있었던 구 이스탄불과 신시가지가 있는

   신 이스탄불로 나뉘고 있다. 보스포르스 해협의 뿔처럼 뻗어져 나온 '골든 혼'에 석양

   무렵이면 햇볕이 수면에 반사되어 황금빛으로 변하므로 고대로부터 황금 뿔 만,

   즉 '골든 혼'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졌다. 

   만의 길이는 12km에 이르고 수심은 40m, 최대 폭이 800m로 자연항구로도 각광을 받았다. 

   이 '골든 혼'의 둑을 따라서 예로부터 예쁜 궁전, 성당, 별장들이 들어섰었고 지금은 나무

   그늘이 지는 분수대와 잔디밭이 나들이를 즐기는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골든 혼은 '배를 산으로 끌고 올라간 전쟁의 현장'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이는 1453년 당시 비잔틴 제국의 해군이 골든 혼의 입구에 해당하는 콘스탄티노플에서

   갈라타 지역까지의 바다를 대형 쇠사슬로 가로질러 설치하여 배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자

   오스만의 술탄 메흐멧 2세가 보스포러스 해협에서 해발 60m의 갈라타 언덕을 가로질러

   골든 혼에 이르는 새로운 길을 만들고 엄청난 규모의 목재 통나무를 깔아 그 위로 76척의

   전함을 골든 혼으로 운반해 후방에서 비잔틴 해군을 공격한 것을 두고 말한다.

  돌마바흐체 자미

  돌마바흐체 자미는 31대 술탄인 압뒬 메지트 1세(재위1839~1861)의 어머니인 ‘베즈미

   알렘 발리데 술탄(1807-1852)’을 위해서 세워졌다. 바로 방금 전 갈라타 다리를 처음으로

   세우게 한 분이다.발리데 술탄(Valide sultan)’은 술탄의 어머니, 즉 모후를 가리킨다.

   자신이 낳은 아들이 술탄을 계승하게 되면 ‘발리데 술탄’이라는 칭호를 받았는데 하렘의

   통치자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고 한다. 돌마바흐체 자미는 1852-1853년에 돌마바흐체

   궁전의 건축가의 한 사람인 니코오스 발얀(Nigogos Balyan)에 의해 완성되었다.

   이사원은 바로크와 르네상스 운동의 영향 하에서 지어져 있어 고전적인 오스만 자미들과는

   전혀 다르다. 돌마바흐체 궁전의 일부로 세워졌기 때문이다.

   이런 초화 크루즈도 지나간다.

   아타튀르크 다리(Atatürk Bridge)

   아타튀르크 다리는 터키어로 아타튀르크 쿄퓨류슈(atatürk köprüsü)다.

   본래 1875년 프랑스 회사가 건설한 세 번째 ‘갈라타 다리’이던 것을 1912년에 조각으로

   분해한 채 철거하여 지금의 장소로 이전한 후 다시 설치한 다리를 말한다.

   구 갈라타 다리로 불리며 1936년까지 사용되다가 폭풍에 의해 손상되자 1936년과 1940년

   사이에 477m의 길이와 25m의 폭으로 다시 건설한 후 터키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이름을 따라 아타튀르크 다리로 그 명칭이 변경되었다.   

  골든혼 메트로 다리 Golden Horn Metro Bridge

   골든혼 메트로 다리는 터키어로는 할리치 메트로 쿄퓨류슈(Metro Haliç Köprüsü)다.

    2009년부터 건설하여 지난 2014. 2. 15일 개통한 최신형 다리로 골든 혼을 이어주는

   메트로 전용다리다.  미화 약 8천 2백만 달러의 공사금액이 투자된 공사로 세계적인

   첨단 과학 기술로 건설한 사장교다.  길이가 936m이고, 폭은 12.6m로 탁심 지하철을

   구시가지의 예니카프와 연결하고 있다.    다리 아래에는 좌우측으로 걸어 다닐 수 있는

   보행자 도로가 있다고 한다. 최신 공법의 다리답게 무척 아름답다.

    ▲  출발시에는 유럽측 해안으로 운항하다가 귀환점에서는 아시아측으로 돌아온다

  ▲  불루모스크도 보인다.

  멀리 블루모스크와 아야소피아 그리고 예니자미와 갈라타 다리까지  왼편으로 들어서면,

      즉  유럽 풍경인데 돌마바흐체 궁전이나 기타 유럽식의 주택들이 즐비하게 보이고  우측

       아시아쪽은 주로 성곽이나 요새같은 건물들 위주로 많이 보인다.

  불루모스크 

   ▲  갈라타 타워

    이스트크랄 거리를 벗어나면 나타나는 탑이다. 입장료 주고 올라가 풍경을 바라봤는데,강추다.

  루멜리히사르성

    메흐멧 2세가 1453년의 콘스탄티노플 전쟁에 대비하여 4개우러만에 만든 요새

 서울에서 온 자매

      ▲  터키의 최고급 군사학교, 터키에서는 꽤 유명한 학교로 터키의 국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와

             사담 후세인등이 이학교 출신이다.

   ▲ 바다위에 떠 있는 건물은  '처녀의 '이라고 불린다.

   보스포러스 해협의 위스키다르 인근의 해안에서 200m정도 떨어진 바다에는 처녀의 탑이 작은

  섬처럼 떠 있다. 이 탑은 비잔틴제국 시대에 만든 요새로 이 해협을 지나는 선박들을 감시하고

  운항세를 받던 곳이었다.   2층 건물로 된 이 탑은 지금은 식당과 카페로 사용되고 있다.  

  이 탑에는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 이곳을 다스리던 왕에게는 공주가 있었는데,   

  어느날 유명한 점술가가 ‘공주는 16세가 되기전에 독사에 물려죽게 될것이다’라고 예언하였다.

  그러자 왕은 독사를 피하기 위하여 바다에 있는 이 탑에 공주를 살게 하였다.  

  그러던 중 많은 세월이 흘러 공주가 16세가 되던 전날 밤 생일파티를 해 주기 위해 선물들이

  들어 왔는데, 그 중 과일 바구니에 숨어 있던 독사에 물려 결국 숨지고 말았다는 슬픈 사연이

  담겨 있다고 한다. 

   ▲  아시아 쪽

   

다음은 톱카프 으로 간다

  톱카프 궁전은 15세기중순부터 19세기 중순까지 약 400년 동안 오스만제국의군주

  거주한 궁전이다. 이스탄불 구시가지가 있는 반도, 보스포루스 해협마르마라 해,

  금각만이 합류하는 지점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세워져 있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이용 중이다. 총 면적은 70만 평이며, 벽 길이만도 5km나 된다. 톱카프 궁전은

  유럽의 다른 궁전과는 달리 화려하지 않은 것이 특색이다. 그러나 건축학적인 면에서

  관심을 두고 볼 것이 많고, 특히 자기, 무기, 직물, 보석 등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이곳의 전체 규모는 원래 크기보다 상당히 축소된 상태이다. 본래의 규모는 오늘날의

  시르케지 철도역과 귈하네공원을 포함하면서 마르마라해 방향의 아래쪽까지 분포했다.

  비록 구조적으로는 메흐메트 2세 때의 기본 설계를 간직하고 있지만, 불규칙적으로

  넓게 퍼져있는 건축물의 집합한 형태라서 특별한건축적 특징을보여주고 있지 못하다.

  새롭게 술탄이 될 때마다 모두 필요에 의해서 궁전에 공을 들였고, 대화재 사건이

  네 번이나 일어나면서 당시에는 존재했을지도 모르는 건축적인 조화를 거의 보존하지

  못했다. 톱카프 궁전 단지는 비룬(외정)과 엔데룬(내정) 그리고 하렘 세 곳으로 나뉘어

  있다. 제각각 안마당이 여러 개 마련되어 있는데, 이 안마당을 연결하여 많은 문을

  만들어 복잡하게 조성된 미로가 갖춰져 있다.

    톱카프궁전 보석관으로 들어가는 입구  

    톱카프궁전 제일 앞에 있는 "제국의 문" 전경

   톱카프궁전의 제1정원을 지나 나타나는 "예절의 문" 전경

  툽카프궁전(Topkap Palace)은 오스만제국의 술탄이 거주하던 곳이었다.

  중세의 오스만제국은 유럽, 아시아 및 아프리카에 걸친 대제국으로 이 궁전은 제국의

  심장과 같은 곳이었다. 궁전은 골든혼, 보스포루스해협, 마르마라해 등 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이스탄불의 노른자 땅에 술탄 메흐메트 2세가 건설했다.  

 15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약 500년간 오스만제국을 통치했던 36명의 술탄 중

  이곳에 살았던 술탄은 18명이었다. 궁전 앞에는 거대한 대포가 있었기 때문에 이곳을

  톱카프궁전(톱은 대포, 카프는 문)이라고 한단다. 70만제곱m(약 21만평)에 달하는

  광대한 궁전은 1856년 새로운 궁전인 신시가지의 돌마바흐체궁전(어제 다녀온 곳)에

  영광을 넘겨주기까지 명실상부한 제국의 핵심이었다. 

 제2정원 오른쪽에는 굴뚝이 줄지어 있었다. 전에는 주방이었는데, 지금은 도자기와

  은제품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왼쪽에도 건물이 줄지어 있었으나 우리는 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올라갔다. 이곳에서 오스만제국의 모든 정치적 결정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제2정원을 “다반의 정원”이라고 부른단다.  

  수령이 엄청남 프라다나스나무

   톱카프궁전 제2정원을 지나 제3정원으로 가는 "행복의 문" 전경 

“행복의 문”을 지나 제3전원으로 갔다. 이어지는 건물은 술탄의 알현실로 외교사절을

 접견하고 중요한 협상을 하던 회담 장소였다. 정원의 오른쪽은 이곳의 백미인

 보물전시실이었지만,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있어 들어가 구경할 시간이 없었다.

 이곳에는 86캐럿짜리 다이아몬드, 세계 최대의 에메랄드가 박힌 톱카프의 단검,

 황금의자 등 다양한 온갖 보물이 전시되어 있다고 했다.

   제3정원의 아름다운 문양이 있는 건물

   제3정원에 있는 건물   

   제3정원에 있는 건물 모습

  제4정원은 술탄과 가족들의 휴식공간으로 다른 정원보다 규모가 작았다.

  이곳은 세 개의 바다가 훤히 내다보이는 전망이 일품이었다. 가장 볼만한

  곳은 왼쪽 구석의 건물로 왕자들의 할례식이 거행되었던 장소라고 했다.

   제4정원에서 바라본 마르마라해와 보스포루스해협 풍경

   제4정원에서 바라본 아시아지역 풍경

   제4정원에서 바라본 골든 혼의 풍경

   제4정원의 정자, 멀리 갈라타탑이 보임

   화려한 이즈니크 타일을 붙인 왕자들의 할례식이 거행된 건물 내부

   제4정원의 건물 내부 모습

   제4정원의 건물 내부 모습

  제4정원의 건물과 조각품이 어우러진 풍경

  출입문 쪽으로 나오면서 무기전시실을 구경하고, 별도의 입장료를 내고

 하렘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거기에도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어 밖으로 나왔다. 모처럼 오스만제국궁전을 찾았지만 어제에 이어

 오늘도 여성들의 공간인 하렘을 보지 못했다. 또한 이곳의 명물인 보석전시실을

 시간이 없어 보지 못한 것이 몹시 서운했다

   촬영금지구역인 줄 모르고 찍은 무기전시실의 당시에 입었던 갑옷

  성 전용실로 가는 길

    여성전용실

 

★  다음은 불루모스크로 간다

   술탄 아흐메트 1세가 성 소피아성당에 버금가는 이슬람사원을 지을 목적이었다.

   537년 완공된 건물인 성 소피아성당의 건축기술에는 못 미치지만, 1616년 완공된

   것으로, 이스탄불에서는 가장 큰 사원이었다. 당시 2~4개의 미나레가 일반적인

   자미 건축 전통을 어기고, 무려 6개나 만든 것이 세인의 입방아에 올랐다.

   아흐메트 1세는 메카의 모스크에 일곱 번째 미나레를 세우는 비용을 대고 나서야

   여론을 겨우 잠재울 수 있었다고 한다.

   블루모스크는 성 소피아성당과 달리 입장료가 없었다. 사원 안으로 들어가자

   260여개의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실내를 비추고 있으며, 이즈니크에서 생산된

   21,000여 장의 푸른색 타일이 창에서 들어오는 빛과 어울려 신비스러운 느낌마저

   들게 했다. 이 때문에 블루모스크라고 불리는 것 같았다. 내부에는 벽의 타일 위에

   적힌 많은 코란 구절들이 있었다. 이것은 오스만제국의 최고 서예가인

  “세이드 카심 구바리”의 글씨라고 했다. 

    불루모스크 사원

     푸른빛이 감도는  아름다운 돔을지녀 "불르 모스크"란 애칭으로 유명한 불루모스크

    본래 이름은?  술탄 아흐멧 모스크로 1616년 7년간의 기간을거쳐 만든 터키의 대표적인

    모스크로서 내부는 화려하고 터키석을 닮은 터키 불루 색상의 타일로 장식이 되있으며

    이슬람의 중요행사와 집회등 공식 행사를 치루던곳으로 교황 베네딕트16세가 공식 방문

    했던곳이라고 한다,  푸른 타일 뿐만 아니라 클라스장식이며 형형색상의 화려함이 덧보였던

    불루 모스크,자미(이슬람사원) 은99%가 터키국민이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이며 종교적으로

    신성한 건물이기에  우리들도 예의를 갖추어 입장하기전 손을씻고 머리카락을 가리는

    스카프를 준비해쓰고,터키의 문화도 존중시 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터키 여대생과 기념촬영

    사원 안으로 들어가자 260여개의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실내를 비추고 있으며, 이즈니크에서

       생산된 21,000여 장의 푸른색 타일이 창에서 들어오는 빛과 어울려 신비스러운 느낌마저

       들게 했다. 이 때문에 블루모스크라고 불리는 것 같았다. 내부에는 벽의 타일 위에 적힌 많은

       코란 구절들이 있었다. 이것은 오스만제국의 최고 서예가인 “세이드 카심 구바리”의 글씨이다.

 히포드럼 (Hippodrome) 광장

 

고대 도시의 심장부로 술탄 아흐멧 광장이라고도 한다.

비잔틴 제국의 마차경기장 이었던 곳으로 비잔틴 유물로 가득한 곳이다,

중앙에 있는 오벨리스크는 이집트의  카르낙신전에서 가져온 것이며, 청동 뱀상은

기원전 497년 페르시아전쟁때 페르시아를 격퇴한 전승 기념으로 스리스 델피의

아폴로 신전에 세워져 있던것을 가져온 것이이다. 세번때 오베리스크는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 을 약탈하던중 벗겨져 기념 주화로

만들어 졌으며 히포드럼에 있던 청동말상도 

베네치아로 가져가 산마르코성당 의 

입구에 장식 하고 있다고한다, 

 

비잔틴 제국때 마차경기가 열릴당시에는 이 광장에

10만 의 관중을 수용 하였다고하며, 이 곳에 있던 각종 기둥과 돌들은

블루모스크이  건축자재로 사욘 되어 웅장한 모습은 사라지고

지금은 공원으로 조성된 넓은 관장에 3개의 기념물만

남아있다. 이 경기장은 U 자 형의 큰 경기장

이었으며 귀족들의 여가, 오락,

사회모임, 결혼식 등이

열리던 곳이다.

 

비잔틴 시대에 세가지 기능이 있었는데

첫째는 각종 스포츠 경기및 예술활동으로 전차경기, 전투사들의 격투였고,.

둘째는 정치무대 로 오스만 시대에 폭동이 시작외었고,

셋째는 비잔틴 형제들의 야외박물관으로 장식 되었단다.

현재는 옛 흔적은 없고 이집션 오벨리스크,

뱀기둥, 콘스탄틴 기둥 분수대 만

남아있다.

  데오도시우스 오베리 스크

 기원전 1,500년경 이집트의  투트모스 3세가 유프라데스강 유역의 카데쉬에서

 히타이트 군대를 격파한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집트 나일강가에 있는것을

 룩소르카르낙 신전에 세운것 이다. 이 오벨리스크를 이집트에서 가져온 사람은

 유리아누스이며, 데오도시우스 황제가 이곳으로 옮겨 세웠다고 해서 데오도시우스

 오벨리스크 라고도한다. 연분홍 호하강암 으로 무게가 300톤,  높이 26m ,대리석

 밑바침에는 전차경기모습,관전하는 황제,춤추는 무희들이 세겨져 있다.

 이 어마어마한 것을 그 당시에는 어떻게 이곳 까지 옮겼을까? 상상이 가지를 아니한다

 ★ 다음은 돌마바흐처 궁전 

  터키이스탄불에 위치한 오스만 제국궁전이다. 터키어로 '정원으로 가득 찬'이라는 뜻인

 '돌마바흐체'라는 이름이 붙고, 화려한 석조 건축물로 세워진 이 궁전은 원래는 목조 건물

  이었으나 1814년의 대화재로 대부분 불타고 31대 술탄인 압뒬메지트(Sultan Abdülmecit)에

  의해서 1856년에 재건되었다. 잘 다듬어진 대리석으로 유럽 스타일을 본따 지어졌는데

  특히 유럽에서 보내온 수많은 현상품과 호화롭게 꾸며진 사방의 벽들을 보면 당시의 생활을

  짐작할 수 있다. 오스만 제국 시대 후기 6명의 술탄이 일부 사용했다. 이후 오스만 제국

  멸망하고 터키국부라 불리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터키공화국을 건설하고 후궁들이

  살던 하렘의 방 하나를 집무실 겸 집으로 삼다 서거 후에는 관광객에게 개방하였다.

  돌마바흐체 궁전 자미 (보스프러스해협서 바라본 광경)

  돌마바흐체 궁전 술탄의 문 (제1문)

   돌마바흐체 궁전 제2의 문

  배를 정박한곳으로 나가는 문

   정원에 핀 수국이 만개이다.

  정박문으로 나가문에 근위병

  돌마바흐체 궁전 백조의 호수

  돌마바흐체 궁전 정원 사자상 앞

  탁심 광장 

  터키 이스탄불의 유럽에 있는 주요 관광지, 레스토랑, 상점, 호텔 등 레저 지역으로 유명한

  광장이다.   이 곳은 현재 이스탄불 지하철의 중심지로, 현대 이스탄불의 중심지로 간주된다.

  또한, 탁심 광장에는 1928년 피에트로 카노니카가 만든 공화국 기념비가 있다.

  이 기념비는 터키 독립 전쟁으로 1923년 터키 공화국이 독립한 5주년을 기념하여 만들어졌다.

  트랩

  트로이 전쟁 유적지

  트로이 목마 

   트로이 전쟁 때 그리스인들이 트로이 성에 들어가기 위해 나무로 만든 거대하고 속이 비어 있던 말.

트로이 목마를 묘사한 두 장의 그림 중 <트로이로 ...

 

뛰어난 목수이자 권투선수였던 에페이오스가 만들었다.

그리스인들은 전쟁에서 철수하는 체하고 근처의 테네도스 섬에

정박하고 있었다. 뒤에 남은 시논은 트로이인들에게 이 말이

트로이를 난공불락의 성으로 만든 아테나 여신에게 받치는

제물이라고 말했다. 라오콘과 카산드라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트로이인들은 이 말을 성 안으로 들여놓았으며, 이 말 안에 들어

있던 그리스 병사들은 그날 밤 성문을 열어 그리스군을 들어오게

했다. 이 이야기는 〈아이네이스 Aeneid〉 2권에 자세히 나와 있고,

 〈오디세이아 Odyssey〉에도 간단히 언급되어 있다.

'  트로이의 목마'는 외부에서 들어온 요인에 의해 내부가 무너지는

   것을 일컫는 용어가 되었다.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국제 공항

   한국영토로 들어옴

 


   이것으로 그리스 +터키 7박9일 일정으로 여행을 마친다.